조용한 사명감으로, 파리 한복판에 한식의 불을 켜다
- admin01
- 7월 7일
- 2분 분량
신용준 셰프의 2024 파리올림픽 코리아하우스 만찬 회고

2024년 7월 25일, 파리 샹젤리제 중심가에 자리한 ‘코리아하우스’에서 대한체육회가 주관하는 파리올림픽 공식 개관 만찬이 열렸습니다. ‘한류의 향연, 파리에서 만나다’라는 주제로, 전 세계 귀빈과 외신 기자 150여 명을 초청한 자리였고, 저는 그날, 그 식탁을 책임지는 셰프로 그 현장에 섰습니다. 이 날만큼은 국가대표 선수들과 다름없는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자리에서 한국 음식을 알리는 일은 그저 요리를 넘는 ‘사명감’이었습니다.
저희는 총 18가지의 코스 및 핑거푸드를 준비했습니다. 한입거리부터 시작해, 가벼운 안주류, 메인 요리, 그리고 디저트까지.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건나물 요리였습니다. 한국의 고유한 산나물의 진짜 맛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사전 준비 기간 동안 지리산 청학동까지 직접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자란 고사리와 취나물을 직접 채집해, 건조 과정을 거친 후 파리로 공수했습니다. 그 나물들이 파리에서 손님들의 접시에 올라갔을 때, 그저 식재료가 아닌 ‘풍경’과 ‘시간’을 함께 전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메인 요리는 한국 떡갈비를 응용한 ‘떡갈비 부르기뇽’이었습니다. 소스를 입힌 떡갈비에 감자를 튀겨 곁들였고, 그 옆엔 토마토 바질 겉절이와 ‘프렌치 잡채’도 함께 냈습니다. 한국의 조리법에 프렌치의 터치를 더한 요리들이었습니다.
저는 늘 생각합니다.
한식은 단순히 전통을 고수하는 것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고요. 프랑스의 조리법과 만나 ‘한식의 가능성’을 더 세련되게 확장할 수 있다면, 그것도 역시 진짜 한식이라 믿습니다. 이날 준비된 메뉴들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한국의 재료와 조리법이 프렌치 테크닉과 손을 잡고, 그 맛과 향, 형식까지 세계인들에게 직관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그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만찬을 준비할 주방이라며 제공받은 공간은 텅 빈 창고였습니다. 전기도, 물도, 조리시설도 전혀 없는 상태였죠. 사전 답사를 마친 후 너무 막막해서 파리에서 비슷한 행사를 먼저 경험하신 강민구 셰프님께 조언을 구했습니다. 셰프님은 당시 미쉐린 3스타 셰프로서 바쁜 일정 속에서도 꼼꼼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고, 그 조언을 바탕으로 현장에 임시 주방을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전기도 부족했고, 올림픽 교통 통제로 식자재 수송도 힘들었습니다. 현지의 한국 분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대형 보조 배터리와 변압기를 구했고, 외부에 태양광 패널까지 설치해 전기를 겨우 끌어올 수 있었습니다. 식자재는 지하철을 이용해 조금씩 옮겼습니다. 하루하루 조금씩 쪼개고 나르고, 현지 조직위 내부 인력을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그들의 도움으로 재료를 무사히 주방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행사는 결국 예상보다 1.5배 많은 400인분을 45분 만에 모두 소진하며 손님들의 극찬 속에 마무리되었습니다. 5시간의 행사였지만, 실제로는 그 중 절반도 되지 않아 모든 요리가 ‘솔드아웃’ 되었고, 한국 음식이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저희 스태프 모두에게 큰 용기와 감동이 되었습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예전에는 오로지 ‘내 요리를 어떻게 잘 만들까’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한식 전체의 성장에 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한식은 이제 더 이상 한 나라의 전통음식이 아닙니다. 세계인 앞에, 그들의 언어로 말을 걸 수 있는 ‘경험의 콘텐츠’이자 ‘문화의 메신저’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일에 작은 한 사람으로서 조용히, 그러나 진심을 다해 함께하고 싶습니다.
– 신용준 셰프, 주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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