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신용준 셰프

  • 작성자 사진: admin
    admin
  • 9월 25일
  • 6분 분량
ree

신용준 셰프의 요리 철학: 요리를 구성하는 네 개의 축

요리를 할 때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네 가지 기준은 ‘재료’, ‘기술’, ‘근본’, ‘완성도’입니다. 먼저 재료는 요리의 본질이자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재료는 그것만으로도 맛있어야 하고, 손질하거나 익히면 더 맛있어야 하며, 궁극적으로 손님이 느낄 수 있는 맛의 감동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제철과 산지를 꼼꼼히 확인하며, 농부님과의 대화 속에서 요리의 방향을 찾기도 합니다.

 

기술은 재료를 다룰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셰프로서 가져야 할 기본기입니다. 값비싼 재료를 다루기 전에는 비슷한 식재료로 수없이 반복 연습하고, 칼질 하나, 열의 강약 하나까지 늘 경계하면서 조리합니다.

 

‘근본’은 전통을 말합니다. 전통과 맥락이 없는 요리는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방향성을 갖게 됩니다. 저는 한식의 뿌리를 공부하고, 시대에 따라 변화한 조리법과 식재료의 맥락을 찾아 요리에 담으려 노력합니다. 마지막은 완성도입니다. 시각적인 균형, 온도와 질감의 적절한 조율, 플레이팅의 흐름까지, 손님이 한 접시에 담긴 저의 생각과 정성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리는 결국 손님이 감각으로 판단하는 예술이라고 믿습니다.

 

ree

좋은 요리란 무엇인가?

저는 ‘좋은 요리’가 꼭 고급 재료나 복잡한 테크닉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의 기억에 남고, 감정을 움직이는 요리가 좋은 요리라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잔치국수 한 그릇도 상황과 정성에 따라 평생 잊히지 않는 감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052는 기술적 완성이나 감각적 세련됨만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기억과 정서, 익숙함 속의 새로운 해석을 동시에 담고 싶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설명하지 않고, 접시 아래에 작은 단서를 남기듯 표현합니다. 손님이 식사를 마친 후 ‘그게 그런 의미였구나’ 하고 돌아볼 수 있게, 요리 하나에도 감정선이 흐르길 바랍니다. 요리를 통해 좋은 경험을 만들어드리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좋은 요리입니다.

 

공간에 대한 철학과 진화

주052는 시작할 때만 해도 ‘전통주점’을 기반으로 한 콘셉트였습니다. 주방도 작고, 간단한 설비만 갖춘 상태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요리를 진지하게 대하는 공간’으로 점점 진화해갔습니다. 그 흐름 속에서 오븐을 넣고, 항온고를 추가하고, 조명이나 테이블 동선, 시선의 높낮이까지 요리를 중심으로 하나하나 바꾸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간의 한계는 분명 존재합니다. 발효실, 숙성고, 여유 있는 작업 공간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도 제약이 많습니다. 저는 언젠가는 좀 더 기능적으로 완성된 주방과 문화적으로 설계된 다이닝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공간은 저에게 초심을 잊지 않게 해주는 곳이기에, 매 순간 감사를 느끼며 한 접시에 모든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ree

한 접시에 담는 경험과 이야기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한 접시를 통해 손님에게 ‘한국 식문화에 대한 감각적인 경험’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052에서는 접시 하나하나에 의도를 숨기듯 담습니다. 예를 들어, 장어쌈 요리는 건강을 위한 메뉴를 넘어, ‘복을 싸서 먹는’ 전통에서 시작된 쌈 문화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장어와 와송, 직접 만든 쌈장을 손님 앞에서 직접 싸서 올리는 이 요리는, 재료의 조화뿐 아니라 행위와 문화의 연속성까지 함께 경험하게 만듭니다. 또 입구에 배치된 항아리, 소나무, 각기 다른 수공예 그릇들은 한국적인 미감과 감각을 은은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제 의도의 표현입니다. 저는 주052를 미각을 중심으로 한 한국 문화의 ‘감각적 언어’가 흐르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주052를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주052는 ‘발효와 전통을 기반으로 한 한식 컨템포러리 다이닝’입니다. 이 공간을 통해 전통의 맥락을 감각적으로 풀어내고, 한국 음식의 미래를 제안하는 요리를 하고 싶습니다. 전통주는 한국적인 경험 전체를 관통하는 미감의 연결선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음식뿐 아니라 술, 서비스, 분위기, 계절감 모두에서 ‘지나치지 않은 세련됨’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한식의 뿌리를 디테일한 조리와 현대적인 언어로 풀어내며,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식사. 그것이 제가 주052를 통해 궁극적으로 그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ree

좋은 한식은 '재료'에서 시작된다

한식 재료를 다룰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계절감’, ‘온도감’, 그리고 ‘생산자’와 ‘지역’에 대한 이해입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절기마다 제철 식재료가 다르기 때문에, 저는 늘 계절보다 두 달 정도 앞서 대표 재료를 정하고, 여기에 어울릴 한약재나 소스 등을 구상합니다. 먼저 눈을 감고 향과 맛을 상상해보고, 어울리는 그림이 그려지면 레퍼런스를 모으고, R&D 스케줄을 짠 후, 직접 생산자분께 연락을 드립니다. 어떻게 키웠는지, 어떤 방식으로 드시는지, 어떤 철학을 담고 있는지 물어가며 배웁니다. 그렇게 재료를 여러 방식으로 조리해보고, 결국 가장 어울리는 방향을 찾아갑니다. 저는 비싼 재료, 싼 재료라는 개념보다도, ‘마음을 담아 정성껏 키운 재료야말로 가장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재료로 음식을 할 때는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함부로 다루지 않는 것이 저의 원칙입니다.

 

"마음을 담아 정성껏 키운 재료야말로 가장 귀한 재료다."

 

'근본' 없는 요리는 감동이 없다

한식을 요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 중 하나는 ‘근본’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새로운 조리법이나 보기 좋은 스타일만 추구해서는 한식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재료와 기술이 있어도, 그 안에 한국 음식의 철학과 문화가 담겨 있지 않으면 그건 단지 ‘트렌디한 요리’일 뿐입니다. 저는 ‘온고지신’, ‘화이부동’이라는 사자성어처럼,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표현을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052의 음식은 전통적인 한식 조리법과 문화에 대한 이해 위에 현대적인 감성과 구성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음식은 표면적인 스타일링보다는, 그 안에 숨겨진 철학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무심하게 설계합니다. 고객들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한국 음식의 미래’가 되길 바랍니다.

 

지금은 한식의 황금기

2016년까지는 한식 파인다이닝이 존재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다각도로 조명받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한식 기반의 창의적인 요리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전통주에 대한 인식도 서서히 생겨났지만, 본격적으로 성장한 건 그 이후입니다. 제대 후부터 한식과 전통주의 흐름을 주의 깊게 살펴보다가, 2021년 10월, 주052를 오픈하며 한식과 전통주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한국의 미식 문화가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Asia’s 50 Best Restaurants가 한국에서 열리고, 해외 셰프들과의 협업이 활발해지고, 한국 셰프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흐름도 커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기가 ‘한식의 황금기’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흐름 속에서, 요리사로서 단지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 머물지 않고, 한국의 음식문화를 콘텐츠화하고 구조화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요리는 삶의 축적이다

어떤 요리든 그 안에는 요리사의 삶이 담깁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유년기의 경험, 가족과의 식사, 지역의 맛, 전통음식과의 기억들이 지금의 저를 만든 요소들이죠. 그래서 요리는 결국 ‘나’라는 사람의 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주052에서 하고 있는 요리는, 한식의 문법과 전통을 기반으로 하되, 저의 개인적인 감성과 삶의 경험이 녹아 있는 방식으로 구현됩니다. 어떤 사람은 같은 재료로 국밥을 만들고, 어떤 사람은 파스타를 만들고, 어떤 사람은 디저트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결국 ‘왜 이 재료를 이렇게 쓰는지’에 대한 나름의 철학과 논리가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요리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저도 제가 살아온 만큼, 그리고 더 살아갈 만큼, 음식이 변화하고 깊어지기를 기대합니다.

 

ree


한식은 콘텐츠다, 그리고 팀워크다

앞으로의 한식은 요리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서비스, 음악, 조명, 도자기, 공간의 향기까지 모두가 함께 작동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식을 ‘종합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주052에서 저 혼자 모든 걸 완성할 수는 없습니다. 주방 팀은 요리를, 서비스 팀은 응대를, 소믈리에는 전통주를 설계하고 커뮤니케이션합니다. 디자이너, 작가, 아티스트들도 함께합니다. 결국 한식은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든 하나의 무대 같은 것입니다. 저는 그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조율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무대 위에서 관객, 즉 손님들이 한식의 다층적인 매력을 오감으로 느끼기를 바랍니다.

 

“한식은 요리가 아니라 콘텐츠다.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무대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

셰프로서의 목표는 결국 ‘꾸준함’으로 귀결됩니다. 매일의 목표는 그날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꾸준히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내일의 목표는 이곳 주052가 팀원들에게 “다른 데보다 여기가 더 좋다”고 느껴지는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주간 목표는 지난주보다 완성도 있는 음식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매달의 목표는 식문화와 정신, 철학이 담긴 ‘접시’ 하나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목표는 예전엔 어떤 단상 위에 오르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시간이 지나도 사랑받는, 오래도록 지속 가능한 셰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052의 오너 셰프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이 레스토랑이 대한민국 미식 씬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찍는, 진정한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규모 뿐 아니라, 실력과 노련함, 그리고 ‘맛에서 느껴지는 우아함’을 갖춘 레스토랑으로서, 지금보다 더 큰 무대로 옮겨 서울 한복판,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경상도 컨템포러리 코리안 퀴진’을 선보이는 것이 궁극적인 비전입니다. 울산 출신 셰프로서, 태화강을 떠올리는 감성을 담아, 서울에서도 정체성과 진정성을 잃지 않고 나아가고 싶습니다.

 

셰프가 아닌 인간 신용준으로서의 배움

셰프로서 팀을 운영하며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바로 ‘소통’이었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에 익숙했던 저는, 예전엔 거의 모든 걸 혼자 감당하려 했고, 조직 내에서 누군가의 불만이나 고민이 있더라도 “셰프가 하라면 해야지”라는 식의 태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심재현 매니저를 만나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사람은 소중하고, 실력 있는 사람은 더더욱 소중하며,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맞물려 돌아갈 때 팀이란 유기체는 비로소 살아 숨 쉬게 됩니다. 그 이후 저는 팀원들과 더 많이 대화하기 시작했고, 팀 내 신뢰와 분위기가 확연히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주052 팀원이 없이는 내가 이 공간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요리는 셰프만의 결과물이 아닌, 수많은 이들의 에너지와 퍼포먼스가 모여 하나의 접시, 하나의 페어링, 하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결국 ‘소통’이고, 그것이야말로 지금의 주052를 만들어준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ree

주052를 통해 손님에게 전하고 싶은 감정

주052에 방문하는 손님들은 각기 다른 기대와 감정을 안고 이 공간에 들어섭니다. 저는 그 경험이 ‘가치 있고, 행복한 기억’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우리는 젊고 활기찬 팀이지만, 그 어떤 레스토랑보다 에너지 넘치고 맛에 있어서도 진중한 공간이 되고자 합니다. 음식과 음료만으로 전부를 전달하긴 어렵겠지만, 우리의 작은 공간이 지닌 에너지, 서비스, 밝음, 그리고 팀원들이 만들어내는 공기의 흐름까지 통해서, 손님이 “주052에서 식사하니까 기분이 좋아졌어요”라는 말을 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다음 단계로 더 큰 공간에서 운영하게 된다면, 그 공간의 공기, 조도, 온도, 향, 음악까지도 하나의 퍼포먼스로 연출해 손님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완벽한 감각의 흐름을 경험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은 하드웨어가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진심, 에너지, 감정은 최대치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손님들과 더 가까이 호흡하며, 다시 찾고 싶은 ‘살아 있는 식당’으로 자리잡고 싶습니다.

 
 
 

댓글


© 2025-2035 by Joo052

bottom of page